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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고친 큰 의사는 몽골 보그드칸산에 묻혔다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04-15 09:29 | 1,665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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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려던 한국인 의사 이태준은 몽골인 수만 명을 매독에서 구해냈다. 그는 소련으로부터 받은 독립운동 자금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고, 몽골의 성산이라 불리는 보그드칸산 언덕에 묻혔다. 

질병은 세계사를 여러 번 바꿨다. 이를테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남북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 수천만 명은 천연두 등 구대륙의 병균에 대한 면역이 전무했기에 유럽인들이 옮겨온 전염병으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사실을 들 수 있을 거야. 아메리카 원주민의 비극에서 보듯, 질병은 주로 전쟁이건 교류건 사람들끼리 지지고 볶고 섞이고 오가면서 전달돼. 그런데 그중 하나라고 지목되는 (달리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무서운 병이 바로 매독이야.

대항해 시대의 선원들을 따라 구대륙 각지로 전파된 매독은 이후 수천만 명을 죽인 1급 살인자로서 그 악명을 떨치게 돼. 오랫동안 매독에는 사실 뚜렷한 치료법이 없었어. 항균 효과가 있는 수은을 바르고 먹기도 했지만 수은은 세균뿐 아니라 인간을 죽일 힘을 너끈히 지닌 물질이었지. 결국 매독 환자는 매독 때문에도 죽었지만 수은 중독으로도 죽었단다.

매독은 주로 성관계를 매개로 전파되는 성병이야.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기생한다는 점에서 매독은 참으로 근절하기 어려운 병이었지. 네가 어릴 적 읽은 위인전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매독의 제물이 됐어. 화가 빈센트 반고흐, 악성 베토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철학자 니체까지. 헤아리기 힘든 사람들이 매독으로 고통을 겪었지. 프랑스 작가 모파상도 그중 하나였는데 그는 매독의 고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어. “내 뇌는 지금 점점 물렁물렁해지고 있습니다. ···밤이면 뇌가 끈적끈적한 액체 상태로 변해서 제 입과 코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제 말은,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미쳐가고 있습니다!”

매독균은 온몸을 망가뜨리고 종국에는 뇌까지 침투해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야. 이렇게 무서운 매독의 위세 앞에 각국 정부는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매독 때문에 한 나라가 통째로 없어질 뻔한 사례가 있었어. 바로 20세기 초반 몽골에서 벌어진 일이지.

중국 대륙에서 명나라가 쇠퇴하고 만주족들이 득세할 무렵, 만주족들은 몽골고원에 진출하기 시작했어. 부족별로 흩어져 있던 몽골인들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있었지. 만주족에게 복속하거나, 저항해 철저히 격파당하거나. 몽골은 만주족이 세운 청 제국의 한 지역으로 남게 돼. 만주족들은 한때 세계를 지배한 몽골인들을 꾸준히 경계했어.

청나라가 거의 망할 즈음이 되어서야 몽골에는 독립의 기운이 돌았는데 청나라나 그 뒤를 이은 군벌들, 그리고 중국의 권력자들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끼어 있던 몽골의 독립을 절대로 반기지 않았지. 나아가 그들은 몽골족의 소멸을 노렸다는 설도 있어. 그 수단으로 동원된 게 매독이었단다. 단국대학교 송병구 교수(몽골학)의 설명이야. “청나라 말기에는 몽골족 마을 우물에 매독균을 퍼뜨리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중앙일보〉 2015년 1월24일).” 또 초야권(결혼하기 전 여자와 첫날밤을 보낼 권리)을 지녔던 라마교 승려들이 매독에 걸리게끔 유도해서 매독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고도 해. 그 결과 몽골 인구는 급격하게 줄었고 매독 환자가 인구의 7할에 달했다는구나. 이때 몽골에 나타난 구세주가 있었어. 바로 한국인 의사 이태준(1883~1921)이란다.

경상남도 함안이 고향인 이태준은 1907년 세브란스 의전에 입학해 의학도가 됐고 1911년 졸업장을 땄어. 이후 세브란스에서 인턴으로 일했지만 평온한 의사 생활은 얼마 가지 못했지. 그는 청년학우회라는 비밀결사에 가입하고 있었는데, 세브란스 병원에서 만난 안창호의 영향을 받았던 거야. 이태준은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어. “선생님이 옥중에서 흉악한 적에게 참혹한 고통을 치르시다 옥에서 나와서 병원에 계실 때 특별히 제게 착한 말씀으로 인도해주시고 또 청년학우회에 입회하라고 권면하시며 회비 일원까지 베풀어주시던 일이 이목에 선명히 떠오릅니다(한국독립운동연구소, 〈도산 안창호 자료집〉).” 이 젊은 의학도는 망해버린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는 의지에 불탔고 중국에서 일어난 신해혁명에 감화돼 망명을 결심한다. “대륙 혁명군의 거대한 바람 소리가 천하에 진동하는지라 이에 감격하여 벗 김필순씨와 함께 길을 떠날 것을 결정하였으니···.”

이태준 무덤 앞에 선 여운형의 말

그는 몽골 지방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김규식의 권유로 몽골로 향하게 됐지. 독립운동 기지 건설은 여의치 않았지만 그는 몽골에서 자신이 할 일을 발견해. 몽골 천지를 뒤덮은 매독과의 전쟁이었어. 이태준이 설립한 동의의국(同義醫局)은 몽골인 수만 명을 매독에서 구해냈단다. 몽골인들은 우리나라를 ‘솔롱고스’라고 불러.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무지개의 나라’라는 뜻이야. 이태준은 가히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신인(神人)과도 같았을 거야. 몽골의 칸이 그에게 내린 훈장의 이름처럼 ‘귀중한 금강석’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의사.

몽골인들에게 의술을 펼치면서도 그는 독립의 꿈을 놓지 않았어. 얘기했다시피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끼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을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이태준의 동의의국은 숙소이자 병참기지이자 연락처였어. 안창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국권과 자유를 어떻게 회복할지 막막하다”라면서도 “선생과 같은 지도자와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마침내 조국을 광복하고 자유를 회복할 날을 그린다”라고 토로하고 있지. 그러나 슬프게도 그의 운명은 길지 못했어. 러시아의 적백 내전, 즉 공산주의자와 제정러시아 지지자의 싸움 와중에 몽골에 들어온 백군에게 체포돼 목숨을 잃고 만 거야.

그에게는 살아남을 기회가 있었어. 러시아인 보리스 볼코프는 “우르가(이태준이 있던 도시)를 점령한 뒤, 한인 의사 리(Li)가 운게른(백군 지휘관)에게 붕대 감은 손을 보여주며 말하길, 자신은 우르가 주둔 중국군 사령관이었던 가오시린의 주치의인데 함께 우르가를 떠나기 거부하자 격분한 가오시린이 자신의 손을 쳤다’고 말했다(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라고 증언하고 있거든. 이태준은 우르가 주둔 중국군 사령관의 주치의였고 함께 탈출하면 살 수 있었음에도 애써 사지에 남았던 거야. 그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것은 운반 책임을 맡았던 독립자금으로 보여. 소련이 조선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한 수십만 루블 가운데 4만 루블이 그의 책임이었거든.

몽골인들은 자기 민족을 절멸의 문턱에서 구해주었던 의사 이태준을 자신들이 성산(聖山)이라 부르는 보그드칸산 언덕에 묻어주었어. 1936년 이곳을 방문한 여운형은 이태준의 무덤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감회에 젖는다. “이 땅에 있는 오직 하나의 이 조선 사람 무덤은 이 땅의 민중을 위하여 젊은 일생을 바친 한 조선 청년의 거룩한 헌신과 희생의 기념비였다.” 이후 묘지는 도시개발 와중에 파괴돼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지만 그 이름은 몽골의 역사에 굵직하게 남아 있단다. 이태준을 격동시켰던 신해혁명의 주역 쑨원(손문)은 이런 말을 했어.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람을 고치며,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小醫治病 中醫治人 大醫治國).” 이 셋을 모두 해낸 이태준은 우리에게, 또 몽골 사람들에게 어떤 의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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